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시카와 지협 (문단 편집) === 류큐 처분 이후([[오키나와 전투]]) === [[1945년]] [[4월 1일]]에 섬 남반부의 [[카데나]] 해안에 [[미 해병대]]가 상륙한 것을 시작으로 [[오키나와 전투]]가 시작되고 미군은 '''일 주일만에''' 손 쉽게 섬 북반부를 장악하게 된다(단 북반부의 완전점령 자체는 3주 가량 걸렸다). 일본군이 주둔한 곳은 주로 남반부였는데다, '''나흘만에''' 진격한 이시카와 지협이 눈물나게 좁아서 보급을 순식간에 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. 이시카와 지협을 손에 넣은 것만으로도 오키나와 현의 중심지인 섬 남반부와 동북향에 있는 일본 본토사이, 아니 '''내지와 해외 영토 전체를 뜯어놓을''' 수 있기 때문에, 일본 제국의 전쟁수행능력을 최대한 빨리 꺾는다는 전략 차원에선 매우 훌륭한 전술이었던 셈. 때마침 섬 북반부를 완전점령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[[베를린 전투|소련이 베를린 국회의사당에 낫과 망치 깃발을 꽂게 된다.]] 그러나 남반부에서 [[일본군]]의 저항과 반격으로 고전을 연발하게 되고 미군은 두 달 동안 남반부에서 고전하게 된다. 이 이후의 자세한 내용은 [[오키나와 전투]] 내용을 참조하자. 종전 이후로는 인구 증가와 각종 인프라 개발이 섬 남반부로 편중되면서 현내 '''지역 불균형'''을 상징하는 기준점이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